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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A, MOMENT



● 라군선, 박수채의 아하, 모먼트 (AHA, MOMENT) - 백곤 (미학)


제주갤러리(서울시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의 2024년 첫 전시로 제주 청년 작가 두 명의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다. ‘아하 모먼트(AHA MOMENT)’라고 명명한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작품세계를 관람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아하 모먼트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처럼 갑작스러운 깨달음, 통찰, 이해를 나타내는 용어로 감탄사인 ‘아하’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경영과 마케팅 용어로도 자주 사용되는 ‘아하 모먼트’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이해하는 방법론으로 쓰이기도 한다. 경영에서 ‘아하 모먼트’가 공감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번 전시에서 라군선, 박수채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관람 팁이 된다. 관객들은 두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며 ‘아하!’하는 순간을 직접 찾으면 된다.

전시는 친절하게 두 작가의 작품세계를 연결하는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는데 바로 ‘감정’과 ‘시간’이다. 감정과 시간은 라군선, 박수채 두 회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이자 생각을 발현하는 주된 모티브이기도 하다. 두 작가는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감정과 시간의 본질을 충실히 연구하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한다. 자연을 재현하거나 형상을 완벽히 드러내는 리얼리즘의 형식에서 벗어난 두 작가의 작품은 자유롭지만 명확한 범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메시지는 ‘아하!’하는 관객의 감탄사에 녹아있는 공감을 끌어낼 것이다. 감정과 시간을 주제로 하는 두 작가의 ‘아하!’ 포인트를 따라가 보자.


멀리 보기와 꿰뚫어 보기

라군선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심 키워드는 ‘멀리 보기’와 ‘꿰뚫어 보기’이다. 그는 본다는 것에 집중한다. 본다는 것은 자신의 시각을 인식한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멀리 보기’와 ‘꿰뚫어 보기’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설정하였다. 그에게 ‘멀리 본다’라는 말은 먼 장소를 보는 것이나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의미한다. 또한 ‘꿰뚫어 본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과 ‘욕심’을 상징한다. 그는 이 두 가지 주제인 ‘멀리 보기(지혜)’와 ‘꿰뚫어 보기(욕심)’를 중심으로 자연의 풍경이나 시선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지혜와 욕심을 감정의 범주에서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두 키워드 안에는 각자의 경험으로부터의 수많은 감정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멀리 보기와 꿰뚫어 보기가 감정의 차원에서 표현되고 이해되며 또한 공감된다고 말한다. 라군선의 작품이 독특성을 지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작품은 외형적으로 풍경이나 독수리를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멀리 보기와 꿰뚫어 보기의 상징성을 표현한 것이자 내면적 의미인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 멀리 보기

라군선 작가의 풍경을 살펴보자. <멀리 보기>라고 명명한 그의 풍경작품은 마치 디자인 도안 작품처럼 깔끔한 선 처리와 그래픽적인 색면으로 평평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디지털에 익숙한 관객들이 봤을 때 어색함이 없이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왜 작가는 이 작품을 멀리 보기 즉, ‘지혜’라는 의미로 표현하였을까? 그는 풍경화는 단지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AI가 그린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그래픽 효과가 감정을 표현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그의 풍경화엔 사막과 뼈대만 남은 앙상한 나무, 다면적인 프레임을 통한 여러 층의 공간 또는 문이 존재한다. 땅의 갈라짐과 절벽, 컴퓨터 그래픽에서 복사해 온 듯한 구름과 노란색의 평평한 하늘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프레임의 경계에 속하지 않는 우측 하늘엔 주황색 태양이 그려져 있다. 관객인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수수께끼를 풀듯 각각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하나씩 풀어보자. 사막은 우리의 생각대로 황량하고 무미건조한 세계이다. 라군선은 감정이 배제된 건조하고 이성적인 세계를 표현하고자 사막을 선택하였다. 그에게 사막은 자연세계의 감성이 아닌 이성적인 세계이다. 그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의 역동성에서 벗어나 인간의 감정 그 자체를 바라보길 원하였다. 사막은 나의 감정을 객관화하여 올곧이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나무형상과 여러 층위의 문이나 벽, 그래픽적인 구름은 이 풍경이 비현실적인 풍경임을 더욱 강조한다.

라군선은 풍경을 통해 감정이 배제된 건조하고 이성적인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그 이성의 세계에는 다면의 프레임이자 벽이며, 또한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가상의 문이 열려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황색 태양이다. 사막의 바닥이 갈라지고 흔들리는 위태로움 속에서도 화면의 중심을 잡고 있는 주황색 태양은 그의 풍경이 단지 비현실이 아닌 현실의 틀안에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프레임과 프레임이 중첩된 비현실에서 온전히 자신을 빛을 밝히는 주황색 해는 그가 말하는 멀리 보기의 상징체이다. 프레임의 층위에 속하지 않는 해를 통해 그는 감정의 소요가 없거나 해체된, 차갑고 건조한 사막에 따뜻함을 불어넣고자 한다. 멀리보기의 지혜는 바로 화면 속 주황색 해와 같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차분하고 고요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직시하는 시선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이 단순한 면 처리와 그래픽적인 효과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철저히 현실적인 고증을 거친다. 그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사실적인 풍경처럼 먼저 사실적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한 다음 그 위에 색면으로 평평하게 그래픽적인 풍경을 뒤덮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연스러운 디지털 풍경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마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정리하고 추상화하여 ‘감정’을 객관화하는 과정과 같다. 라군선이 말한 멀리 보기의 지혜는 여러 감정이 난립하는 감정의 찌꺼기를 제거(추상화)하고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는 내면의 응시라 할 수 있다.


- 꿰뚫어 보기

두 번째 라군선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는 바로 ‘꿰뚫어 보기’이다. 그는 이를 상징하는 동물로 독수리를 선택하였다. 그는 독수리를 개인의 욕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매개체로 보았다. “독수리는 높게, 멀리 날면서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독수리의 특징에 더 나은 능력을 바라거나, 막대한 물질을 바라는 마음처럼 사람들은 개인적인 욕심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는 또한 독수리가 다양한 국가나 민족, 종교에서 구원자나 심판자, 대리인의 특징을 가진 신의 상징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욕심과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감정과 이성의 경계에서 불안과 공포, 안정과 평화를 오가는 자아의 성찰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독수리라는 상징적 매개체를 통해 관객들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를 권한다.

<꿰뚫어 보기>에서의 독수리는 사냥꾼처럼 공격적인 비행의 모습이 아닌 날개를 접고 나뭇 가지 위에 앉아 관객을 응시하는 정적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꿰뚫어 보기’에서의 나뭇가지 또한 사막의 풍경과도 같이 무미건조하다. 인간의 욕심과 감정을 상징하는 독수리 날개의 다면 구성과 색면은 단지 표현기법을 넘어 우리 마음속에 내재한 여러 층위의 욕심들을 나타낸다. 독수리는 화면의 중앙에서 관객인 나를 응시한다. 마치 내가 분수에 넘치게 다른 것을 탐하여 더 욕심을 낸다면 독이 될것이라는 경고를 하듯 내 눈을, 아니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 하다.

라군선의 꿰뚫어 보기는 사실 멀리 보기와 다름이 없다. ‘지혜와 욕심’은 하나의 주제이다. 그가 표현한 사막의 무미건조한 풍경은 마음속 욕심을 제거하고 더 멀리 바라보고 나아가기 위한 예술적 제안이다.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는 독수리는 우리 마음속 여러 감정들을 꿰뚫어 보고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감정에 메여있는가? 아니면 멀리 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가?” 독수리는 안정적인 비행을 한다. 날개를 퍼덕이지 않고도 충분히 멀리 빠르게 날아갈 수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목표한 타겟을 높은 곳에서 바로 바라볼 수 있다. 비행이 아닌 앉아있는 독수리는 감정의 끈에 매여있는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라고 말한다. 독수리의 비유를 통해 작가는 현실이라는 감정의 무게에서 벗어나 성찰과 정화를 통해 지혜롭고 자유롭게 멀리 날아가야 하지 않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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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군선과 박수채의 ‘아하 모먼트’는 의미를 찾기보다 작품과 오래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상징과 의미로 구성된 회화작품을 감상하는 기준은 관객인 작가 자신에게 있다. 스펙터클하고 화려한 효과가 가득한 미디어 홍수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더 강렬하고 더 번쩍이는 자극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강렬함보다 은유적이고, 감정을 환기할 수 있는 예술적 경험이 우리의 기억에 더 진한 각인과 삶에 여운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감정과 시간이라는 주제로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두 청년 작가의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작품은 관객인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와 우리 자신을 한번 바라보라고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