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V
2. Artist’s note
3. Critic
AHA, MOMENT
4. Exhibition5. Artworks
*???
Artist’s note
0.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작업 전반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직접적으로 생각하며 준비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슬픔, 분노, 사랑과 같은 감정부터 새로 습득한 지식이나 일상 속 사건에서 느꼈던 깨달음 등 결국에는 고민에 대한 정답을 원하며 했던 생각들을 주제로 작업이 진행되었음을 깨달았다. 또한, 표면에는 경험, 감정, 생각을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 이면에는 상황 또는 생각의 결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규정한 이미지들, 즉 주체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1.
작업은 경험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한다. 일상 속 사소한 일들부터 커다란 사건까지 그 안에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 등을 해부해보며 이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통해 재해석한 이야기를 진행한다.
작품들의 전체 주제가 되는 ‘경험’, 더 나아가 ‘삶’은 무작위적 톱니바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사소한 일 하나마저 이를 해부해보면 생각, 감정, 상황, 관계, 환경, 장소 등 말과 글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요소가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장치하고 있다.
다만, 시계 속 톱니바퀴는 일정한 방향으로 오차 없이 돌아가는 것과 달리 삶은 무수히 많은 장치가 각자의 역할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있으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불가능한 예측 속에서 탄생한 하나의 경험에 대해 생각의 과정을 거치며 화폭 위로 옮겨지고 이것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어느 한 사람의 기록임은 물론, 누군가의 과거 속 숨어있던 희로애락과 모험담을 꺼내올수도, 더 나아가 작가와 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형성한 다른 세계가 될 수도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기록을 열람하는 사람들이 각자만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여기서 비롯한 다양한 영향과 생각, 이를 통해 형성된 세계를 공유하는 작품을 앞으로도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
2.
‘멀리 보기, 꿰뚫어 보기’ 작업은 욕심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으로 인한 어리석은 행동을 하며 이로부터 후회할 때도, 때로는 누군가의 욕심으로 인해 난처한 상황을 겪을 때도 있었다.
욕심이라는 낱말에는 경험자 각자의 다양한 감정이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모종의 일로 큰 감정적 괴로움을 겪은 후 시간이 지나고 안정이 되었을 때 앞으로의 다짐으로서 ‘지혜’를 열망할 수도, 다른 이와 비교하거나, 개인적 목표를 통해 느낀 감정들이 질투 또는 분노로서 ‘파괴적인 욕심’으로 향할 수도, 외부의 욕심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마음들은 그저 무덤덤해지는, 정신적 피곤함만이 남는 감정의 종말로 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욕심이라는 마음 자체에 대해서 절대적인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속 한 곳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희망하는 마음. 이로부터 자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도 있지만, 미묘한 생각과 선택의 차이로 다른 이 또는 자신에게 폐를 끼치는 독이 되는 행동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멀리 보기, 꿰뚫어 보기’ 작품은 욕심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이에 대한 직접적인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관람객 시점에서 낯선 대상이 자신의 방향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시선으로부터 작가를 포함한 관람하는 모든 이들에게 내면의 거울, 더 나아가 어느 척도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가장 주된 요소는 ‘독수리’이다. 독수리는 높게, 멀리 날면서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독수리의 특징에 더 나은 능력을 바라거나, 막대한 물질을 바라는 마음처럼 나의 개인적인 욕심들을 투영하면서도, 독수리와 나열된 욕심들을 고민하다보면 결국에는 자기 생각과 행동을 성찰하게 되는 양심 또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수리는 다양한 국가, 민족, 종교에서 구원자와 심판자, 대리인의 특징을 가진 신의 상징으로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의 감정, 생각, 행동의 과정과 같이 결과를 결정하는 마음의 모습은 운명을 결정하는 신의 모습과 흡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의 존재는 어쩌면 인간이 종교를 통해 자신을 낮추고 신을 섬기는 것 이전 감성과 이성을 숭배하며 현실에 대한 문제 해결부터 초월적 힘에 대한 갈망까지 각자의 마음을 신의 모습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처음으로 돌아가 나열한 욕심과 이에 대해 성찰하는 양심까지의 과정, 판단의 척도인 마음은 결국 모든 인간의 숭고함이자 결과를 결정하는 내면 속 각자의 신이라는 생각으로부터 독수리를 상징적 이미지로 사용하게 되었다.
작품 속 독수리는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추구하며 불안과 공포 같은 특정한 감정의 유발을 목표하는 것이 아닌, 관람자가 날카로운 시선으로부터 느껴지는 여러 감정이 개개인의 배경과 함께 다양한 생각에 대한 재생산을 목표하고 있다.
3.
고요의 시간 (Time of Silence)
72.7×60.6(㎝)
Acrylic on canvas
2022
고요의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으나, 흐름에 따른 풍화는 나의 공간에도 작용하면서 모습을 차츰 바꿔나갔다. 나의 공간에 자라난 무수한 나무 덩굴은 낡은 방파제와 벽을 휘감으며 땅과 종속시켜 더욱 견고히 만들었고, 시야에서 벗어났던 어선들은 여전히 내 곁에 존재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저 스스로를 숨기고 고립시키며, 절망과 분노에만 집중했기에 파도에 맞서 앞으로 나아갈 생각도, 여전히 바다 위에 부유하던 배들 조차도 발견하지 못한 채 어딘가에 자신을 방치했던 것이다.
4.
해도를 위한 관찰 ( Observation for Nautical chart)
100.0×80.3(㎝)
Acrylic on canvas
2022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의 선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타들어 가는 동안, 동시에 바닥에 앉아 침묵을 유지하며 가지는 생각의 시간에 파도가 어딘가에 부딪혀 내는 충돌의 소음만이 가득하다.
반복되는 소음들은 나열해둔 생각들을 어지럽게 흩트린다. 소리를 따라갔을 때 파도가 서로에게 부딪혀 내는 모양은 본래의 모습을 잃은 채 왜곡된 형상을 띄고, 다양한 모습으로 복사되며 발목부터 집어삼켜 바닷속으로 끌어들인다. 같은 자리에서 바다를 관찰한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바다를 관찰한다.
다만, 침묵을 지속하는 동안 파도의 소음에 휘둘리기보다 이를 관찰하며 제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항해를 위해 해도(海圖)를 구체화 하는 것에 집중한다.
5.
Pathfinder
162.2×130.3(㎝)
Acrylic on canvas
2024
걷다 보면 막막하고 지칠 때가 있다. 초행길은 까마득하고, 실로의 두려움은 뒤를 쫓는다. 감정이 짓누를 때는 돌아보지 말자, 내딛지 않은 한 발자국 앞에 귀를 귀울이고, 먼저 찍힌 발자국들을 훑자. 여러 발자국의 모양과 방향에는 배움이 있고, 배움은 볕으로 가는 길을 밝혀줄지도 모른다.
6.
이상한 사람의 미술관 관람 방법
116.8×91.0(㎝)
Acrylic on canvas
2024
굿 럭
90.9×72.7(㎝)
Acrylic on canvas
2024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한다. 군중의 수많은 눈이 끈처럼 아니면 뱀처럼 길게 이어진다. 서로를 가리는 이곳은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는다.
작품을 관람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작품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별로인데. 내가 너무 진지한 건가 아니면 이상한 건가. 둘 다 맞지만 아니다. 다들 좋다는데 아니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겠지 인정하기 싫지만 아니다.
사실 다른 사람 눈에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도 별 상관이 없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가리는 북적한 상황에서 상대와 작품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 그저 북적한 미술관을 헤매며 운 좋게 좋은 작품들을 발견하기 바랄 뿐이다.